본문 바로가기

film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2011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일본 영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접했던 일본 영화들은 모두 나의 정서와 맞지 않아서 매번 불편하고 찝찝했다.
내용도 내 스타일이 아닐뿐더러 꼭 저질스러운 장면이 하나씩 나와서 싫었다.

이 영화도 처음부터 와닿지는 않았다.
그래서 키리시마는 어디 있는 건데?
왜 끝까지 나오지를 않는 거야?
일본 영화는 왜 이렇게 나를 난해하게 만들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를 못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키리시마는 그저 서사를 위한 맥거핀이었다는 사실을 점점 깨달았다.
그의 존재는 이 영화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부류의 학생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멍청하게 키리시마만 등장하기를 기다렸던 나...
당연히 마지막에 등장할 줄 알았다.
게다가 영화 보기 전에는 제목만 보고 히가시데 마사히로 배우가 맡은 역할이 당연히 키리시마인 줄 알았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삽입된 음악도 시끄러워서 중간에 영상을 꺼버렸었는데
점점 이 영화가 내 일상생활에 침범하기 시작했다.
내 꿈이 무엇인지,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마음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금도 마음이 참 불안하긴 한데, 그때의 나는 이 영화와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 감정을 말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어렵다...
점점 커지는 여운에 마지막 옥상 장면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봤다.
마에다와 히로키 두 인물 모두에게 깊이 공감했다.
마에다의 대사는 특히나 정말 인상적이다.

"싸우자. 이곳은 우리들의 세계다.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하니까."

이 영화를 기점으로 이후에 내가 찾아본 영화들은 <하프웨이>,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이다.
사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 모두 잘생기고 예뻐서 본 것도 있다...
앞서 말한 두 작품 모두 남자 주인공이 오카다 마사키라는 배우이다.
그리고 두 작품도 나름 마음에 들었다.
어쨌든, 일본 영화에 대한 진입 장벽이 어느 정도 허물어진 것 같다.
이제는 일본의 학원물 감성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저런 따뜻한 색감의 영상 분위기도 좋고... 음악도 좋다.
내용이 조금 허술할지라도, 교복 입은 학생들이 나온다는 것 그 자체가 좋다.
학창 시절 나의 모습이 생각나서 그런 것 같다.

지금도 많이 찾아 듣는 타카하시 유우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가수 목소리도 시원하고 가사가 현재 내 마음과 지극히 똑같다.
이 노래가 와닿는 사람들은 분명 나와 말이 잘 통할 것이다.
함께 길 위에서 헤매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학창 시절 때 나름 마에다처럼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히로키에게도 공감이 된다.
무시당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영화부 부장 마에다에게서,
꿈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그냥 생각 없이 하루를 흘려보내는 야구부 히로키에게서도,
사라진 키리시마를 대신해 리베로 포지션에 들어오지만 비교당하는 배구부 후스케에게서도,
마에다와 영화라는 연결고리로 더 친해질 수 있지만 자신이 속한 무리의 시선 때문에 차마 그러지 못하고,
점점 자신의 무리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만 소속감이 중요한 학교에서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함께 다니는 미카에게서도,
배드민턴을 진심으로 좋아하면서 점수 때문에 동아리를 하는 거라고 속마음을 숨기는 카스미에게서도,
히로키를 짝사랑하지만 사나 눈치를 보며 그를 바라만 보는 소심한 아야에게서도,
나의 모습이 보인다.

유일하게 공감가지 않은 캐릭터는 리사와 사나. 당연하다.
나는 애초에 잘 나가는 무리 속에서 주도권을 잡는 부류의 학생은 아니었으니까 ㅋㅋ

학교 안에서도 나눠지는 계급.
그 속에서 일어나는 기싸움.
나도 모르게 숨기게 되는 나의 속마음.
눈치 안 보고 싶은데 이상하게 남시선이 신경 쓰이는 분위기.

정말이지 이 영화는 나의 일부나 다름없다.

 

뒤에서 "빨리 가"라고 재촉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앞에선 "밀지 마"라고 소리치며 나를 노려보고 있지.
비슷한 답답함을 당신도 느껴본 적 있어?
불행만을 가득 끌어안고 있는 듯한 이 외로움을.
저 멀리 아득한 곳에 비치는 빛을 만나고 싶어서,
누구 할 것 없이 자신을 잃고,
지금도 서로가 서로를 빼앗고 있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거라면
처음부터 포기하는 편이 현명해.
입을 모아 한탄하면서도 우리들은 걸어가고 있어.
저 언덕 너머로 가슴을 뛰게 하면서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8 Mile, 2002  (0) 2023.01.30
13 Going On 30, 2004  (0) 2023.01.30
시월애, 2000  (0) 2023.01.30
Shutter Island, 2010  (0) 2023.01.29
Arrival, 2016  (0) 2023.01.29